조이밴쿠버

1997년 11월 발생한 리나 버크 살인 사건

한국서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접하고, 예전에 캐나다에서 일어난 리나 버크(Reena Virk) 살인 사건이 떠올랐다. 한국으로 치면 중3에 해당하는 9학년생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한국 사건과 유사성은 가해자 2명이 어린 나이에 잔혹한 일을 벌였다는 점과 발생 정황이다.

사건 내용을 그대로 정리만 하고, 결론과 느낌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JoyVancouver.com 권민수](https://www.facebook.com/mozeye)

아마도 97~98년도에 캐나다에 살았다면 접했을 버크양 사건은 결과 면에서는 더 참혹하다, 사건이 벌어진 때는 1997년 11월 14일 금요일밤. 장소는 밴쿠버아일랜드 빅토리아와 북쪽 새니치 경계 지역에 있는 클레이그플라워 브리지다. 지금은 그 당시 다리는 철거되고, 새 다리가 세워졌다.


 

6명이 1차 폭행 후, 2명이 쫓아가 살해

피해자 리나 버크양. 당시 14세. 사진=Police News release

사건 시작은 만14~16세 청소년 6명이 술과 대마초에 취한 상태에서 리나 버크(당시 14세)라는 소녀를 다리 밑에서 때리면서 시작했다.
증언에 따르면 버크양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잘나가는 아이’로 보이고 싶어 했다. 금요일밤 파티에 나온 이유도 또래 친구가 절실하기 때문이었다.
가해자 중 한 명인 니콜 쿡(Nicole Cook∙당시 14세)은 담뱃불로 버크양 머리를 지졌다. 쿡양은 버크양이 자기 전화번호부를 훔쳤다고 생각했고, 또 일행 중에 누군가 남자친구와 버크양이 통화했다는 사실이 매우 못마땅했다.

 담뱃불은 집단 폭행의 시작이었다. 여러 명 구타가 이어지다가 잠시 뜸해진 틈에 버크양은 겨우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그러나 켈리 엘라드(Kelly Ellard∙당시 15세)라는 소녀와 워렌 글로와스키(Warren Glowatski∙당시 16세)라는 소년은 버크양을 뒤쫓아갔다. 둘은 다리 다른 편으로 버크양을 끌고가 신발과 자켓을 벗긴 후 때렸다. 엘라드는 버크양 머리를 나무에 찍었다. 의식을 잃은 버크양을 엘라드는 글로와스키의 도움을 받아 강물에 밀어넣었다.


사건을 처음 드러낸 건 소문이었다. 파티에 모인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침묵하기로 했지만, 17일 월요일. 피해자와 가해자가 다니던 새니치의 쇼어라인 고교(Shoreline Secondary)에는 살인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결국 22일 경찰이 버크양 시신을 고지인렛(Gorge Inlet)이란 수로에서 발견하면서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 부검의 닥터 로렐 그레이(Dr. Laurel Gray)는 소견서에서 "머리 부상은 익사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사망에 이르렀을 치명상”이라고 밝혔다.

버크양 머리 전체, 이마, 귀, 뺨에 타박상이 발견됐다. 머리에는 계속된 발차기가 원인으로 추정된 운동화 자국도 있었다. 머리를 나무에 부딪치며 입은 타격으로 버크양 두뇌는 부은 상태였다. 또 심한 타박상이 배와 가슴, 골반 근처에서 발견됐다. 사인을 익사로 한 이유는 기도에서 조약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머리가 얕은 물 속에 눌린 상태에서 숨 쉬려는 몸부림 결과로 부검의는 추정했다.

 

1차 폭행 6명 재판과 처벌

경찰은 소문과 제보를 통해 처음 폭행한 소녀 6명과 살인을 한 2명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캐나다 사회에 도덕적 충격을 줬다. 일이 일어난 배경은 상당한 관심사가 됐다.
이 가운데, 주먹을 휘두른 6명은 이듬해 폭행 상해죄(assault causing bodily harm)로 98년 기소돼, 청소년 법원 재판에서 집행유예 60일에서 금고 1년형을 선고받았다. 처음 6명은 폭행 상해죄보다 한 단계 높은 가중 폭행죄(Aggravated Assault)로 기소됐지만, 유죄 인정을 해 검찰이 처벌을 한 단계 낮췄다. 가중폭행죄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알면서도 극단적 폭력 행사한 때 적용한다.

살인 2인 중 글로와스키 재판과 처벌

[ 워렌 글로와스키. 사진=Reena Virk Documentary 캡처

1998년 글로와스키는 사건 심각성에 따라 성인 재판부에 2급살인으로 기소돼 7년간 임시석방 신청 금지조건으로 최고형인 종신형(금고 2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맬콤 맥콜리(Malcolm Macauley)판사가 “폭력은 유흥거리가 아니다(Violence is not a recreational activity)”라며 “리나 버크의 죽음과 그로 인해 너를 포함해 산산이 조각난 인생들이 이 점을 증언해주고 있다(the death of Reena Virk and the shattered lives, including yours, are a testimony to that)”라고 한 말은 널리 화자됐다.


글로와스키는 종신형을 다 살지는 않았다. 재판 전 구금 기간을 금고 기간 2배로 계산하는 형량 산정 방식에 따라 임시석방 신청이 처음 가능해진 2004년에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2006년부터 단기 임시석방을 두 차례 신청해 허가를 받았고, 이어 2010년 6월에는 완전히 풀려났다. 버크양 유가족이 석방에 반대하지 않은 점이 컸다.

 임시석방 과정에서 글로와스키 가정 상황이 드러났다. 별거로 인해 부모를 따라 어려서부터 여러 곳에 거주했던 글로와스키는 1996년에 아버지가 라스베거스에서 만난 여자와 재혼하며, 새니치 트레일러 파크에서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혼자 살게 됐다. 즉 사건 발생 1년 전, 그는 빈민 지역에 방치된 아이였던 셈이다.

살인 2인 중 켈리 엘라드 재판과 처벌

켈리 엘라드. 2005년. 사진=CBC보도화면 캡처


엘라드 재판 역시 성인 재판부로 올라가 2000년 3월에 밴쿠버에서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은 3주간 30여 명 증인이 출석해 이뤄졌는데, 이들은 모두 엘라드가 자신이 한 살인에 대해 “행복감(Happy)”과 “긍지(proud)”를 표시했다고 밝혀 큰 충격을 줬다. 여기에 대해 변호인은 다른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엘라드를 모함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첫 판결은 종신형(금고 25년형)이었다.

그러나 앨라드는 다른 7명처럼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 마지막까지 애드리언 브룩스(Adrian Brooks)변호사는 앨라드가 소문과 거짓말 때문에 기소됐다고 주장했다.이 변호사는 후일 다른 사건 변호로도 유명해진다. 로버트 픽튼 사건이다. 엘라드 역시 버크양을 때렸지만, 질식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14~16세 고등학생 여섯이 다른 한 명을 살인범으로 만들기 위해 모의했다는 이 주장은 의외로 항소심에서 일정 부분 작동한다. 2004년 2심은 배심원 의견 불일치로 인한 재판 무효(mistrial)가 선언된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재판을 치르면서도 엘라드 인성은 후회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2심 대기 기간 중 엘라드(당시 21세)는 2004년 뉴웨스트민스터에 살면서 58세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 기소돼, 캐나다 최고의 문제아로 찍혔다. 엘라드는 친구 드니카 칼링햄(Danica Callingham 당시 19세)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동안 피해자를 잡아 누른 혐의를 받았다. 둘은 피해자가 전화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드러난 전모로는 둘은 공원에서 술에 취해 피해자에게 합석을 권했고, 전화기가 보이지 않자 도둑으로 몰아 얼굴을 수 차례 때렸다. 버크양을 도둑으로 몰아 폭행했던 정황과 비슷한 면이다.


결국 2005년 4월 3심에서 엘라드에 대한 2급살인 유죄가 확정된다. 사건 발생 8년 만에 유죄선고에 대해, 버크양 어머니 수만 버크(Suman Virk)가 TV에 나와 한 말은 밴쿠버 사람들 가슴을 쳤다. 버크씨는 “오늘, 여기에는 아무도 승자가 없어요. 우리 모두 패배자입니다”라며 “저는 제 딸을 잃었고, 제 부모는 손녀를 잃었지요. 엘라드 집안은 또 그 딸을 잃었습니다. 우리 누구도 이전 같은 삶을 살지 못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리나 버크양의 어머니 수만 버크. 사진=SFU 범죄학과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장면

그러나 엘라드는 판결 동안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리처드 보맨(Robert Bauman) 판사는 엘라드를 향해 “여전히 반항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반사회적 태도를 보인다”며 “당신이 지금 상황을 만들었으니, 당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통감할 때 어른으로 인생이 시작되며, 그리 못하겠다면 스스로 만든 악몽에 갇혀 영원히 지내게 된다”고 꾸짖었다.
그해 7월 형량 선고공판에서 25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간 그녀는 잠시 사람들 사이에 잊히는 듯했다.


엘라드 옥중 임신 사건

2016년 33세 엘라드는 다시 뉴스에 등장한다. 옥중 임신이라는 놀라운 사건으로 말이다. 2012년에 11건에 달하는 침입 절도(Break and enter) 혐의로 7년 2개월형을 선고받은 다윈 도로잔(Darwin Dorozan∙당시 41세)이라는 남자가 아이 아버지로 드러났다. 둘은 옥중 펜팔로 관계를 시작해, 남자는 임시석방을, 여자는 수감자가 일정 교화한 태도를 보이면 2개월 중 최대 72시간 허용하는 가족 및 부부 방문의 날을 이용한 거로 공영방송 CBC등은 추정했다.


엘라드가 뉘우치기를 포기한 버크 가족은 이 소식에 태중에 아이를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옥중 출산한 엘라드는 산모와 아이가 함께 머무는 BC주 애보츠포드 보호감호 시설에 있는 상태다.


그리고 올해에는 1월 단기 형정지(외출)를 신청해 당국으로부터 거절 당했다가 2월 허가를 받았다. 아이 교육과 병원방문 조건 허가라고 한다. 단기 형정지는 임시 석방과 달리 수형 기간을 고스란히 채우는 조건부로 외출을 허락하는 절차다.


단기 형정지 심사 과정에서 엘라드는 당신이 아니었다면 리나 버크가 계속 살아있었겠느냐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이전 범죄 부인과는 조금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정말 뉘우침인지, 혹은 ‘소중하다’라고 표현한 자기 자식을 향한 모성에 따른 위장인지는 엘라드 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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