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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가 강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될 때 거치는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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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쿠온 2020. 1. 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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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화려한 종교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난 캐나다 사는 기독교인이다.

 

살다보니, 기독교와 거리가 먼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 모습을 종종봤다.

 

그런 사람 중에서, 소위 '에고가 강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는 거 같다. 

 

공통점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공통점: '처참한 실패'


에고가 강해 신앙과는 거리를 뒀던 사람은 인생 어느 순간 '처참한 실패'를 경험한다.

처참한 실패는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공통적 표현을 뽑아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실패하다니"로 요약된다.

본인이 평소에 가졌던 실패의 기준, 그 기준보다 훨씬 밑에 내려선 자신을 발견한다.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 인간관계적... 뭐 세상은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 아니어서 실패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런 실패가 있지만, 에고 때문에 남에게는 먼저 말 못하고, 도움 받지도 못 한다. 

 

공통점: 누군가 메신저의 등장


이때 메신저가 등장한다. 메신저의 메시지는 간단하게 "교회 가보자"로 요약된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 메시지가 들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는 기적적으로 들린다.

단, 대부분 에고가 강한 이들은 처음 교회에 감사하며 가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그래, 나 이토록 망가뜨려 놨으니 당신 마음대로 해보셔"

 

가끔 메신저가 뜬금없는 '메시아' 또는 구원자 역할을 하려해서 교회문을 박차고 나와 다시 안가는 사람도 있긴 하다.

 

에고가 강한 사람에게 메신저가 누구냐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럼에도, 종종 메신저가 구원자 역할을 하려 들어서 강한 반발심을 느꼈다는 경우도 자주들었다. 

 

대게 메신저는 초청장만 전달하면 된다.

 

공통점: 감화나 감동이 일어난다

에고가 강한 이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 가사라던가, 기도문, 또는 성경 한 구절이 마음에 파고드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따져 묻기 위해 가져온 문제가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여러 형태로 묘사된다. "산산히 부서져 사라진 느낌", "때를 밀고났을 때보다 개운한 느낌", "뭔가 새로와 진다는 기대감", "어릴 때로 돌아간 듯한 순수함" 등등.  

이런 경험은 곧 대죄, 대속의 의미가 결국 자신이 힘들게 씨름해왔던 걸, 2000년 쯤 한 유대인 청년이 대신 짊어메고 죽었다는 기독교 교리와 접목되면서, '유레카'의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한 개인 안에서 종교가 성립하는 순간은, 단순히 그 유대인 청년이 죽은 거로 끝이 아니라, 그 청년이 모든 죄를 없애고 다시 살아났다는 걸 믿는 순간이다.

 

 

그 믿음이 발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는 내가 듣기로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에고가 강한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고 해서, 당면한 문제가 급속도로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상황과 문제에 대하는 개인의 태도가 바뀐다.

이런 변화는 '부활'또는 '거듭남'과 같은 작용을 하는 거 같다. 

믿기 전 자신과 믿기 시작한 자신이 삶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일어난다.

더 드라이하게 설명하자면 대부분 사람이 특정 시각 이후 부터 급속도로 일어나는 자기 관념의 변화 또는 자기 변화의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공통점: 변화할 용기가 생긴다


부활과 같은 작용이 일어나면,  용서 안되는 사람이 용서되고, 패배감이 희망으로 바뀌고, 절망이 더 이상 절망이 아니게 된다.  한 순간에 될 수도, 혹은 성경공부를 하면서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 

 

그걸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가르치는 듯 싶다. 

무엇보다 에고가 죽어봤기 때문에 죽음과 같은 상황에 대응할 용기가 생긴다.

문제에 대한 태도와 접근 방식이 바뀌면서, '메시아'라는 동반자와 새로운 삶의 걸음을 내딨게 된다. 

그걸 '성령이 함께한다'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공통점: 변화를 선택한다


거듭 강조하는데, 대부분 완고했던 사람들의 문제가 기적적으로 사라지는 경우는, 내가 들어본 경험으로는, 참 드문거 같다.


그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변화의 첫걸음을 내딧는 건 개인의 몫이었다.

 

진짜 신앙인은 쉽게 걸어갈 수 없었던 길, 예컨대 엄청난 실수에 대한 책임을 담담하게 지는 양심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의 형틀인 십자가 조차, 자신의 영혼과 타인의 구원을 위해 기쁘게 짊어진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결론

 

세상이 정말 힘들게 할 때, 하나의 길로 기독교라는 문은 열려있다. 

 

선택이야, 본인의 몫이다. 교회가고 말고는, 교회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만큼이나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독교라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검토해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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